[정책의 맥] 선사와 수출입기업 相生 필요하다

입력 2020-11-22 18:24   수정 2020-11-23 00:21

미래학자 레스터 서로가 그의 저서 《제로섬 사회》에서 그린 미래는 어두웠다. 한정된 재화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사회 내 이익과 손실의 합이 제로(0)가 되는 ‘제로섬 사회’에서는 한쪽의 수익이 다른 쪽에는 손실이 되는 이해상충의 경제적 관계가 지배한다. 최근 해운시장 상황도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방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반등하면서 미주노선을 중심으로 해상운임이 급격히 상승함에 따라 해운선사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지만, 수출 기업들은 제품 배송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모처럼 찾아온 호황에 차질이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해운선사와 수출입 기업 간 ‘제로섬 게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해양수산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선화주 업계 간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을 시작으로 컨테이너 선사 간담회, 선화주 상생협의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HMM, SM상선, 고려해운 등 주요 국적 컨테이너선사도 정부의 노력과 수출업계 요구에 화답하고 있다. 임시선박을 긴급하게 투입하고, 수출 중소기업에 별도 선적 공간을 할당하는 한편 선사 간 컨테이너 박스 공동관리체계 구축을 논의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잰걸음 중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단기적인 처방은 될 수 있지만 장기 대책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계절, 정치, 환경, 유가 등 다양한 외부 요인에 의해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해상운임 특성상 최근과 같은 운임 급변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2008년부터 금년 초까지 10년 이상 유지된 저운임은 한진해운 파산으로 대변되는 국적선사의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했다.

해상운임이 상승하면 선사가 웃고, 하락하면 화주가 웃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선화주 관계에 해답은 없는 걸까? 아니다. 선사와 화주가 장기간 일정한 운임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계약을 체결한다면 선사는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할 수 있고, 화주도 운임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윈윈 관계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자사에 유리한 운임 상황이 됐을 때 눈앞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기 쉬운 기업 속성상 쉽지 않을 수 있으나, 여건만 갖춰진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해양수산부는 해운산업의 구조적인 제로섬 게임을 극복하고, 선사와 화주가 상생할 수 있도록 ‘우수 선화주 기업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장기운송계약을 통해 선사의 안정적인 화물 확보에 기여하는 화주, 그리고 화주에 안정적인 운임과 선적 공간을 제공하는 선사를 우수 선화주 기업으로 인증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다. 법인세와 항만시설사용료 감면, 정책금융 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는 기업들이 당장의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리스크 관리를 고민하며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상생체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한 이후 2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 20일 드디어 HMM, 현대글로비스 등 6개 기업이 첫 번째로 우수 선화주 기업 인증을 받았다. 특히 HMM과 현대글로비스가 통상 1년 미만의 단기계약을 체결하는 관행을 넘어 장기운송계약 체결을 추진하기로 서면 합의하는 등 선화주 상생체계의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시작은 6개 기업이지만, 모든 선화주에 우수 선화주 기업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 앞으로 많은 기업의 참여를 희망한다. 정부에서도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발굴하며 제도를 발전시킬 것이다.

최근 해운시장 상황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안정적인 해상 운송 여건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선사와 화주가 장기적 상생을 도모함으로써 제로섬 게임을 극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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